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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스타 팔로워 늘리기 SK하이닉스, 20조원 이상 투자…청주에 HBM 생산기지 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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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작성자 진주꽃 작성일날짜 24-04-30 09:43 조회1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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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스타 팔로워 늘리기 SK하이닉스가 잠정 중단했던 충북 청주 신공장 공사를 다시 시작한다. 내년 준공되는 이 공장에서는 고대역폭메모리(HBM)를 생산할 예정이다. 한동안 침체기였던 D램 등 메모리 시장이 인공지능(AI) 열풍에 발맞춰 완연한 회복세에 접어들었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SK하이닉스는 24일 이사회를 열고 청주에 건설할 신규 팹(반도체 공장) ‘M15X’를 D램 생산기지로 낙점하고 약 5조3000억원을 투자하기로 결정했다. SK하이닉스는 이달 말 공사를 시작해 내년 11월 준공 후 양산에 돌입할 계획이다. 장비 투자도 순차적으로 진행해 장기적으로 M15X에 총 20조원 이상을 투입한다는 방침이다.
청주 신공장 공사가 재개되는 것은 1년 만이다. 앞서 SK하이닉스는 청주 테크노폴리스 산업단지에 M15X를 착공하겠다고 2022년 발표했으나, 정보기술(IT) 수요 위축으로 메모리 시장이 급격히 얼어붙으면서 지난해 4월 건설을 중단했다.
하지만 지난해 말 이후 D램을 비롯한 메모리 가격이 반등하기 시작하면서 미뤄뒀던 신공장 프로젝트에 다시 착수했다. M15X에서 D램과 낸드플래시 중 어떤 반도체를 생산할지 정해지지 않은 상태였는데, 이번에 D램 라인으로 확정 지은 것이다.
SK하이닉스는 AI 시대가 본격화되면서 D램 시장이 중장기적인 성장 국면에 접어든 것으로 보고 있다며 연평균 60% 이상의 성장세가 예상되는 HBM과 함께 서버용 고용량 더블데이트레이트(DDR)5 모듈 제품을 중심으로 일반 D램 수요도 꾸준히 증가할 것이라고 밝혔다.
D램 여러 개를 묶은 HBM은 미국 엔비디아의 AI 칩에 탑재되는 고부가가치 제품으로 꼽힌다. SK하이닉스는 HBM은 일반 D램 제품과 동일한 생산량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최소 2배 이상의 캐파(생산 능력)가 요구되는 만큼 D램 캐파를 늘리는 게 선결과제라고 판단했다며 이번 결정의 배경을 설명했다.
SK하이닉스는 경기 용인에서도 120조원 이상을 투자하는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사업을 추진 중이다. 용인 클러스터 부지 조성 공정률은 약 26%로 기존 목표보다 빠르게 공사가 진행되고 있다. 용인 첫 반도체 공장은 내년 3월 착공해 2027년 준공된다.
곽노정 SK하이닉스 대표는 M15X는 전 세계에 AI 메모리를 공급하는 핵심 시설로 거듭나 회사의 현재와 미래를 잇는 징검다리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피해자 없는 범죄(Victimless crime). 마약이 대표적이다. 신고할 피해자가 없는 범죄 마약은 조용히 사회 곳곳에 퍼져갔다.
남녀노소·사농공상 가리지 않고 마약 투약자는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특히 ‘저연령화’가 두드러진다. 가장 보편적인 마약류가 메스암페타민, 즉 히로뽕이다. 온갖 종류의 마약이 우후죽순 퍼져나간 데는 히로뽕이 60여 년 전부터 한국 땅에 중독의 토양을 만들어 놓은 영향이 컸다. 히로뽕 유통의 역사를 이해하는 것이 만연한 마약 유통의 문제를 이해하는 출발점이 되는 이유다.
주간경향에서 히로뽕의 역사와 현재 즉 대한민국 ‘뽕의 계보’를 5회에 걸쳐 되짚는다. 직업물 웹소설 및 실화 기획사 팩트스토리와 공동기획했다. <편집자 주>
[주간경향] L은 히로뽕 업계의 혁신가였다. 그는 인터넷 메신저 텔레그램에서 ‘로뽕이’나 ‘Mr. 메스’ 같은 이름으로 불렸다. 히로뽕을 제대로 팔아보자며 그가 만든 브랜드다. 이제는 보편화한 텔레그램 마약 거래의 근원을 추적하다 보면 L, 즉 ‘로뽕이’를 만날 수밖에 없다.
그는 2018년 무렵 텔레그램에서 활동을 시작했다. 이때 히로뽕 업계는 다시 한번 변하고 있었다. 익명성이 강화된 메신저 텔레그램이 보편화하고, 가상화폐와 인터넷 세계의 암시장으로 불리는 다크웹이 퍼져나갔다. L은 이 변화에 올라타 이름을 알렸다.
2023년 8월 L을 처음 만났다. 출소한 지 한 달쯤 지나 그런지 눈빛이 강렬했다. 키가 그리 크지 않지만 체격은 단단해 보였다. 1980년생이라고 소개했는데 동안이라 더 어려 보였다. L과 인터뷰는 두 차례에 걸쳐 진행했다.
텔레그램 세계의 마약왕이라 불리는 그도 평범한 투약자 시절이 있었다. 교도소를 오가며 전통의 히로뽕 거물들과 안면을 쌓아가기 전이었다.
그의 원래 직업은 타투이스트였다. 과거 판결문에 적힌 L의 직업명은 문신업자, 문신기술자, 스킨아티스트 등이었다. L은 ‘문신’이 ‘타투’가 되는 것만큼 많은 변화를 겪었다.
그가 히로뽕의 세계에 처음 발 들인 건 고교 졸업반 시절이다. 지역의 농업고 원예과 학생이었던 그는 학업에 별 흥미가 없었다. 취업 준비를 할 때 길에서 우연히 접한 ‘문신 광고’ 전단이 삶의 행로를 바꿨다.
미군기지가 있는 경기도 송탄이나 동두천에서 활동하던 기술자가 L이 사는 지역에 가게를 열었다. 지울 수 없는 그림을 몸에 새기는 일에 그는 빠르게 매료됐다. 그때는 ‘문신장이’라 불렸다. 타투라는 용어는 생소했다.
그때 문신하러 오는 주 고객이 건달이나 화류계 여성들이었죠. 히로뽕도 그들에게서 접했고요.
L은 호기심에 접한 히로뽕에 빠르게 매료됐다. 각성제인 히로뽕은 투약자들의 표현대로 휠(feel)을 잡는 게 중요하다. 투약 후에 각성 상태가 되면 한 가지 일이나 감정, 느낌에 사로잡혀 말 그대로 ‘꽂혀’ 버리는데, 이때 어떤 방향으로 갈지 잡아가는 것을 의미한다. 히로뽕은 ‘향정신성 의약품’으로 분류된다. 투약하면 한 방향으로만 꽂혀 버린다고 해서 ‘방향 향(向)’ 자를 쓰는 것 아니겠냐고 말하는 이도 있다.
영화나 드라마에서는 마약을 투약한 이들이 몽롱한 표정을 짓는 것으로 자주 묘사된다. 하지만 실제 히로뽕 투약자들은 오히려 정신이 매우 또렷하고 흥분된 각성 상태에 빠진다고 말한다. 잠도 자지 않고 먹지도 않고 ‘휠’이 꽂힌 일에만 집중한다.
보통 투약자들은 성적인 방향으로 ‘휠’을 잡는다. 하지만 L은 먼저 문신에 꽂혔다. 히로뽕을 투약하고 ‘휠’이 잡히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문신 작업을 했다. 그렇게 히로뽕에 점점 깊이 빠져들었다.
히로뽕 자체는 담배나 아편 같은 신체적 중독성은 없다고 한다. 하지만 투약 후 쾌감을 느끼게 하는 신경전달물질인 도파민이 대량 분비된다. 투약 횟수가 늘어날수록 내성이 생겨 투약 용량을 늘리지 않으면 이전과 같은 감각을 느낄 수 없다. 결국 정신적 의존 상태에 빠져 중독과 마찬가지의 상태가 된다.
L은 타투 고객들에게 산 히로뽕을 친구들에게 전해주면서 자연스럽게 판매와 알선의 세계로 발을 들였다. 알선 등의 혐의로 몇 차례 징역을 살았고, 교도소에서 만난 히로뽕 인맥은 계속 넓어졌다.
그는 내심 억울했다. 자신이 판매업자는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필요한 지인에게 히로뽕을 구해다 줬을 뿐이라는 것이다. 히로뽕을 판매하는 일은 ‘넘어서는 안 되는 선’을 넘은 것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알선만 해도 판매업자나 마찬가지로 처벌받고 징역을 살았다.
L은 이왕 넘은 선을 훌쩍 뛰어 더 넘어보기로 했다. 어차피 처벌받는 거, 제대로 판매해보자.
망설이지 않은 것은 아니다. 본격적으로 히로뽕 업계에 뛰어들기 전 L은 마지막 도전을 했다. 사회와 교도소를 오가는 히로뽕 비즈니스의 굴레를 벗어나 합법적으로 살아보려는 시도였다. 2017년 1월 출소한 후 거제 조선소로 향했다. 대형 시추선 건조 현장이었다. 24시간 동안 제대로 쉬지 않고 일하는 ‘4공수’짜리 일이 생기면 좋았다.
L은 조근과 야근을 이어갔다. 한 달에 450만원을 벌어 나름 풍족하게 살았다. 그해 5월 조선소에서 대형 크레인이 붕괴하는 사고가 벌어졌다. 흡연실 옆에서 벌어진 사고였다. 사고 시간 전 그 역시 그곳에 있었고, 다른 현장에 투입되는 바람에 살아남았다. 이런 경험에도 그는 조선소를 떠나지 않았다. 합법적인 삶을 향한 몸부림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 일이 끊겼다. 불황이 시작된 탓인지 선박 수주가 줄면서 조선소에 일거리가 사라졌다. 한 달 근무일이 3~4일에 그쳤다. 생활비도 구하지 못했다. ‘하늘의 계시인가?’ 그는 고민 끝에 히로뽕 판매를 하기로 했다.
L은 장사를 제대로 하기 위해 히로뽕도 끊었다. 히로뽕 투약자 중 단약에 성공하는 사람은 10명 중 1명이라고 한다. 그 1명은 대부분 판매업자라는 게 이 업계의 통설이다. 판매 중에 붙잡혀 투약 사실이 나오면 변명이 통하지 않기 때문이다. 히로뽕보다 돈을 향한 갈망이 더 큰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가 히로뽕 비즈니스의 혁신가라고 불린 건 이 시기에 그가 시도한 방식 때문이다. 그는 당시 시작된 텔레그램을 통한 히로뽕 판매를 체계화한 인물이었다.
L은 교도소 수감 중 인터넷을 통한 히로뽕 거래를 배웠다. 그러다 텔레그램의 존재를 알게 됐다. 텔레그램은 익명성이 보장된 메신저 프로그램이다. 텔레그램을 통해 히로뽕 구매 희망자와 대화하고, 비대면으로 돈과 물건을 주고받는다면 수사기관의 눈을 피할 수 있다는 생각이었다. 지금은 당연한 것처럼 여겨지는 히로뽕 판매 방식인데 당시에는 막 시작된 신종 수법이었다.
L은 히로뽕 세계의 거물들과도 잘 알고 지냈기에 저렴한 가격에 히로뽕을 지속적으로 공급받을 수 있었다. 텔레그램을 통해 히로뽕을 판매하는 이중 상당수는 안정적인 공급선이 없어 돈만 받고 사라지는 사기꾼으로 전락하거나 판매기간이 짧았다. L에겐 그런 문제가 없었다.
수요는 걱정할 것 없었다. 2018년에만 한국에서 향정신성 의약품 투약자로 적발된 이가 5108명이었다. 검찰은 마약 사건의 드러나지 않은 암수 범죄 비율을 적발자의 29배, 약 15만 명으로 봤다. L이 보기에도 수요는 넘쳤다.
문제는 홍보였다. 텔레그램으로 마약을 판다는 일은 생각만큼 쉽지 않다. 우선 자신이 히로뽕을 팔고 있다는 사실을 알리기부터 어렵다.
L은 타투이스트로 일할 때 블로그나 홈페이지를 운영해 홍보하던 것을 떠올렸다. 그래서 여러 홈페이지에 히로뽕을 팔고 있다며 광고글을 써 올렸지만 제대로 노출되지 않았다. 검색 사이트에서는 몇 페이지나 넘어간 뒤에야 자신이 쓴 글이 발견됐다.
연구 끝에 검색 결과 상위에 노출하는 방법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각종 인기 키워드를 조합하고, 각종 조작 프로그램(매크로)으로 방문자를 유인했다. 구매자들이 히로뽕을 뜻하는 은어 ‘아이스’, ‘빙두’ 같은 단어를 구글 등 검색 사이트에 치면 첫 페이지 상단에 노출되게 하는 것이다. 또 사이트 분석 프로그램을 통해 히로뽕 소비자들이 어떤 검색어를 써서 자신의 사이트에 방문하는지 분석했다.
이렇게 사이트를 알린 뒤에는 단골을 만들어야 한다. 히로뽕 판매도 다른 장사처럼 신뢰가 중요하다. 텔레그램으로 히로뽕을 사는 것은, 불법적인 일을 하는 얼굴도 모르는 사람에게 대화 몇 번 만에 거액을 건네는 일이다. 히로뽕을 안전하게 손에 쥘 수 있다고 보장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돈만 받고 히로뽕을 주지 않는다고 하소연할 곳도 없다.
그래서 L은 우선 첫 구매에 만족감을 주기로 했다. 구매 문의가 오면 빠르게 대응하고, 입금이 확인되면 재빨리 히로뽕을 찾을 위치를 알려주고, ‘정량·정가 판매’, ‘정오부터 오전 7시까지 정시 영업’ 등 나름의 장사 기준을 지키며 단골을 모았다. 단골은 물론 히로뽕을 구걸하는 악성 고객에게도 좋은 리뷰를 써달라 부탁한 뒤 서비스를 줬다. 입소문을 노렸다.
단골을 비대면 거래에 필수적인 ‘드롭퍼’로 고용하기도 했다. 히로뽕을 특정 장소에 숨겨두는 역할이다. 돈을 입금하면 이 장소를 나타내는 ‘좌표’를 고객에게 전달한다. 이른바 ‘던지기 수법’이다.
이런 드롭퍼 중 상당수는 20대 청년이었다. 그들은 자신이 무슨 일을 하는지 어렴풋이 짐작하면서도 돈을 벌 수 있는 욕망으로 히로뽕 비즈니스에 뛰어든다. 하지만 실제로 그들은 큰돈은 벌지 못하고 부속품처럼 쓰이다 버려지는 게 일반적이다.
L은 결제 방식도 고민했다. 차명 계좌를 통한 무통장 입금뿐 아니라 상품권 대리구매, 가상화폐 거래 등 다양한 방식을 연구했다. 밖으로 나가 현금 인출기에서 돈을 뽑고 차명 계좌에 돈을 입금하는 것은 번거롭고 귀찮으면서 위험하기 때문이다. 이 과정을 간단하게 하면 자연스럽게 단골이 늘어날 것이라고 계산했다.
쉽고 빠르고 안전한 거래에 만족한 히로뽕 투약자들은 L의 브랜드인 로뽕이를 계속 찾았다. 2018년 인터넷에서 히로뽕을 사기 위해 검색하면 늘 그의 브랜드인 ‘로뽕이’와 ‘Mr. 메스’가 나왔다. 그보다 전에 시작한 히로뽕 판매업자들도 있었지만, 그의 빠른 성장에 밀려 사라졌다. 그보다 전에 활동했던 ‘굿필777’이란 아이디를 썼던 판매업자는 L과 텔레그램 채팅창으로 욕설을 하며 다툰 일도 있다. 경쟁업자와의 기싸움이다.
시장을 빠르게 장악한 L은 거래량이 늘어나면서 수사기관을 피하려고 거처를 수시로 옮기고 여러 대의 차명 통신장비를 갖췄다. 히로뽕 판매는 단 한 번의 체포로 모든 걸 잃을 수 있다. 위험 관리가 히로뽕 판매업자들에겐 중요했다.
L의 모습을 보고 많은 이들이 텔레그램으로 뛰어들었다. 히로뽕 거래는 이전까진 소수의 총판을 거쳐 도매업자와 소매업자에게 차례로 전달되는 형태였는데, 텔레그램이 히로뽕 거래 플랫폼 역할을 하면서 다수의 판매업자가 중간 단계를 거치지 않고 고객과 바로 만나는 ‘오픈 마켓’의 형태를 띠게 됐다.
절대로 잡히지 않을 것만 같았던 L은 약 1년 만에 검거됐다. 사소한 실수로 자신을 주시하던 수사기관에 위치가 노출됐다. 수사기관의 추적을 완벽하게 피한다고 생각했지만, 불가능한 일이었다.
L의 텔레그램 거래는 일반 투약자를 상대로 한 소매거래였고, 비대면이라 거래 횟수가 많았다. 이런 내역이 압수된 휴대전화에 고스란히 남았다. L은 체포된 뒤 자신의 판매 기법을 밝히고 수사에 협조했다. 2019년 징역 5년에 벌금 2000만원, 추징 2억2262만원을 선고받았다. 선처받은 형량이었다.
과거의 혁신가였던 L이 수감 생활을 하는 동안, 텔레그램을 통한 히로뽕 거래는 보편화했다. L은 뽕의 계보에서 독특한 인물이다. 히로뽕 유통업자들을 일본 시장을 상대로 제조·밀수한 1세대, 국내파 투약자로 한국 시장에 유통한 2세대, 텔레그램 비대면 거래에 나선 3세대로 나눌 수 있다. L은 2세대와 3세대 사이에 걸친 2.5세대인 셈이다.
요즘 애들은 또 달라요. 이제 무통장 입금은 거의 안 쓰고 가상화폐 거래로 완전히 자리 잡았다고 해요. 과거의 홍보 방식도 잘 안 쓰죠. 고객 응대하는 텔레그램 채널도 휘황찬란하게 꾸며놓고요. 투약자도 아니면서 돈 벌어보겠다고 뛰어든 애들도 있어요. 이전과는 전혀 달라요.
텔레그램을 통해 탄생한 신흥 히로뽕 거물이었던 L. 매일 거액의 현금을 손에 쥐면서 짧지만 호화롭게 생활했다고 말했다. 언제 붙잡힐지 몰라 모두 써버리자는 마음이었다. 하지만 결국 철창신세를 지고 나와 이제는 다시 불법의 굴레를 벗어나 살기 위해 애쓰는 중이라고 했다.
L은 ‘과거로 시간을 돌릴 수 있다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가끔 한다고 했다. 히로뽕을 팔아 번 돈은 결국 하나도 남지 않고 사라져버렸다. 히로뽕이 쾌락과 돈을 쥐게 해줄 것이란 것은 환상 같은 것이었다. 이제는 개털이 됐어요. 일장춘몽이었죠. L은 말했다.
그들의 슬픔을 껴안을 수밖에
이브 엔슬러 지음|김은지 옮김|푸른숲|410쪽|1만8800원
콩고민주공화국 동부에 위치한 부카부에는 ‘기쁨의 도시(City of Joy)’라는 성폭력 피해 여성들의 회복 공동체가 있다. 내전이 장기화되고 분쟁 상황이 이어지면서 정부군, 반군, 민병대할 것 없이 여성들을 강간했다. 강간은 공동체를 파괴해 광산을 차지하려는 군대의 전쟁 전술이자 무기였다. 강간 피해를 입고 살아남은 여성들을 부카부 판지병원을 찾았다. 의사 드니 무퀘게는 헌신적으로 그들을 치료하고 지원했다. 헌신과 신뢰, 연대로 ‘기쁨의 도시’가 건설됐다. 무퀘게는 이 공로로 2018년 노벨평화상을 수상했다.
2018년 제작된 다큐멘터리 <기쁨의 도시>는 전쟁 범죄 피해자인 콩고민주공화국 여성들이 끔찍한 기억을 딛고 일어나 자신의 목소리를 내며 세상에 맞서는 과정을 담은 작품이다. 다큐멘터리에는 절망의 폐허 속에서 생존 여성들이 자신의 목소리를 되찾고 자신 안에서 분출하는 힘을 발견하는 인상적인 장면들이 나온다. 거기에는 ‘한 걸음 나아가 공간을 장악하라’ ‘폭력이 끝나는 날까지 연설하라’ ‘최악의 상황을 겪은 여성들이 콩고를 위해 가장 큰 목소리를 낼 수 있게 하자’며 그들을 돕는 극작가 이브 엔슬러가 등장한다. 이브 엔슬러는 생존 여성들에게 어린 시절 아버지로부터 강간과 구타를 당한 자신의 이야기를 전한다. 그의 이야기를 시작으로 고통스러운 기억들을 공유한 여성들은 서로 힘을 주고 받는다. 생존 여성인 제인은 말한다. 이브가 자기 이야기를 할 때 아주 주의 깊게 들었어요. 그런 끔찍한 일이 서양에서도 일어난다니 정말 놀랍죠. 그걸로 마음에 힘을 얻고 희망이 생겼어요.
<버자이너 모놀로그>로 잘 알려진 극작가 이브 엔슬러가 45년 동안 써온 산문과 시, 편지, 에세이를 선정해 묶은 <그들의 슬픔을 껴안을 수밖에>가 출간됐다. 그의 글들은 레이거노믹스의 출현, 보스니아 내전, 콩고민주공화국 내전, ISIS의 발호, 코로나19 팬데믹 등 현대사를 관통하며 폭력적인 역사의 현장 속에서 고통받는 여성들의 이야기를 다룬다. 분노와 슬픔, 그리고 희망이 뒤엉켜 있는 그의 글은 동시대를 살아가는 이들에게 책임과 연대의 의미를 환기시킨다.
이브 엔슬러는 2007년 8월 콩고민주공화국 부카부 판지병원을 방문해 전시 강간 생존 여성들과 의사 무퀘게를 취재한 후 ‘죽음에 내몰린 여자들과 그들을 돕는 남자’라는 글을 한 잡지에 기고한다. 그는 이 글에서 여러분에게 이렇게 부탁한다. 내가 먼 부카부 판지병원에서 그랬듯 당신도 내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주기를, 마음을 열어주기를, 함께 분노하고 구역질해 주기를이라고 당부하며 사람들은 다국적 기업의 대리인이자 광산 관리자인 민병대를 피해 달아난다. 식민주의와 자본주의, 인종차별주의가 얽혀 만든 죽음의 교차로가 이제는 여성의 몸을 관통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대량 강간이 일어나는 곳은 대부분이 광산이고 이들 광산에는 컴퓨터와 플레이스테이션, 휴대전화 들어가는 콜탄이 묻혀 있다. 그들이 겪어야 했던 끔찍한 고통과 자본주의에 잠식된 우리의 삶에는 분명한 연결고리가 있었고, 이브 엔슬러는 이를 상기시킨다.
뒤이은 그의 시 ‘세례’는 거대한 분노와 슬픔 속으로 독자를 집어넣으며 다시 한 번 어떤 책임을 촉구한다. 그는 이 시에서 부카부 판지병원에 가득한 소변냄새에 대해 말한다. 이는 강간 피해자들에게 생긴 누공 때문이다. 누공은 질과 방광 사이의 조직에 난 구멍을 의미하며 인권이 말살된 폭력적인 상황에 대해 말해준다. 너무 많은 남자들이 강제로 폭행한 여덟 살 소녀를/ 내 무릎 위에 앉혀 끌어안는다/ 소녀의 안에는 구멍이 하나 있다/ 아이의 오줌이 나도 모르게 나를 적셨을 때/ 나는 세례를 받았다/ 콩고는 끝나지 않았다/ 당신이 만지는, 하는 모든 것 안에 있다/ 혹은 하지 않는 것에.
고통스러운 역사의 현장으로 달려가 피해 여성들의 증언을 듣고 이를 세상에 전달하는 인스타 팔로워 늘리기 일은 그에게는 ‘해야만 하는 일’이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예술가의 정체성이 앞서 혼란스러운 자괴감에 빠지기도 했다. 1994년 보스니아 내전 당시 크로아티아 난민캠프에서 여성들을 인터뷰하고 쓴 글 ‘레이철의 침대’는 그가 했던 고뇌의 과정을 보여준다. 그는 (나는) 극작가 역할을 유지하느라 진을 뺐다. 나는 이야기를 들으며 내가 만들 드라마를 상상했고 여자들이 하는 말의 리듬과 속도를 가늠해 보았다. 이런 접근 방식으로 나는 무엇에도 휘둘리지 않는 매정하고 우월감에 젖은 사람이 되었다고 토로했다. 그는 전쟁 통의 잔악함 속에서 예술을 끌어내고자 했던 이 욕구는 나의 무능에서 기인했다고 자인하며 이제는 이야기 밖에서 스스로를 보호하지 않겠다고 결심한다. 다음은 방어기제 없이 피해자들 속으로 들어가려고 하는 그의 의지를 보여준다. 저를 앞세우지 않게 해주세요. 제가 집 잃은 사람이, 집을 그리워하는 사람이 되게 해주세요… 익명이 되게 해주세요. 그리하여 나의 차례, 나의 메시지, 나의 몫, 나의 작품, 나의 순간을 걱정하는 마음을 버리게 해주세요. 마침내 원 안에 앉을 준비가 되게 해주세요.
팔자 좋은 양반? 먹고사는 데 진심이었다
불합리한 지시엔 ‘의문’을 품어라
‘안전한 책’이 좋은 책일까?…흥미진진 ‘금서의 세계’로 떠나자
친족 성폭력 및 가정폭력 생존자이기도 한 이브 엔슬러는 2018년 <아버지의 사과 편지>라는 책을 썼다. 그는 그를 성적으로 학대하고 폭행했던 아버지가 사과하기를 기다렸지만, 사과받지 못했다. 아버지가 죽고 31년이 지난 어느 날, 아버지에게 받아야 했던 사과를 직접 쓰겠다고 결심하고 이 책을 썼다. 그는 2021년에 쓴 글 ‘사과의 연금술’에서 힘 있는 자들은 사과하지 않는 법을 익힌다. 그들은 스스로를 피해자로 만든다라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자기 죄를 진실로 대면하는 성범죄 가해자의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죄를 인정하고 자신을 들여다보고 자기 범죄의 뿌리와 근원을 거슬러 올라가는 고난의 작업을 한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없어요…제 아버지는 어느 책에서 잘못을 시인하는 남자는 남자들의 적이라고 배웠습니다. 한 명이 자기 잘못을 인정해 버리고 나면 모든 서사가 무너지기 시작할 것이라고요.
그는 이제 이브 엔슬러라는 이름 대신 V라는 이름으로 글을 쓴다. 가부장제, 자본주의, 식민주의의 기억들이 만들어낸 폭력의 서사, 혐오의 서사, 배제의 서사가 아닌 새로운 서사를 만든다는 의미에서다. 그는 통제하고 구분짓고 착취하는 이들의 대척점에 선 ‘V종족’에서 자신의 기원을 찾는다. 근거 없는 이상이라는 누군가의 비아냥에도 개의치 않는다. 어차피 세상은 누군가 만들어낸 이야기로 이루어져 있다. 힘을 가진 자들이 이야기의 등장인물과 시점, 형식을 전할 뿐. 나는 이름이 가진 힘을 믿는다. 성서가 되거나 찬사로 남거나 회상이 되거나 주문이 되거나. 기억처럼 보이는 것이 예언이 될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것은 우리에게 달렸다. 우리 모두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