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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선의 인물과 식물]제국대장공주와 작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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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작성자 진주꽃 작성일날짜 24-05-07 19:29 조회0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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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당 한 귀퉁이에 붉은 작약이 피었다. 진분홍 꽃잎이 매력적이다. 작약과 모란은 사촌간이지만, 모란은 크고 화려한 색깔의 꽃을 자랑하는 나무이고, 작약은 상대적으로 꽃이 작으면서 꽃잎 개수도 적은 풀이다. 모란이 젠체하는 꽃이라면, 작약은 낯을 가리는 꽃이다. 화기(花期)가 짧은 것도 부끄러움 때문일 게다. 특히 백작약의 함초롬한 모습은 때론 가련하게도 느껴진다. 그에 따라 모란은 부귀영화, 작약은 수줍음 등을 상징한다. 중국에선 작별할 때 작약을 꺾어주던 풍습에 따라, ‘가리(可離)’, 즉 이별의 꽃이기도 하다. 작약에 얽힌 가슴 아픈 이야기가 있다.
충렬왕 22년에 왕과 공주가 원나라에 갔다. 이듬해 진왕(晉王)이 자기 나라로 귀환할 때 황제가 그의 관저로 가서 전송했는데, 왕과 공주도 그 연회에 참가했다. 술자리가 흥겨워지자 공주가 노래를 부르니 왕은 일어나 춤을 추었다. 그해 5월에 귀국했는데, 때마침 수녕궁에 작약이 만발했다. 공주가 꽃 한 가지를 꺾어 오라 하여, 오랫동안 손에 잡고 완상하더니 감회를 못 이겨 눈물을 흘렸다. 그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병이 들어 현성사에서 사망했는데 향년 39세였다.(<고려사> 권 89 열전 2)
고려 충렬왕의 부인 제국대장공주는 칭기스칸의 손자 원 세조 쿠빌라이의 딸이다. 고려 원종의 맏아들인 충렬왕은 세자로 원나라에 있을 때 제국대장공주와 혼인했다. 혼인 당시 공주의 나이는 19세, 충렬왕은 39세였다. 충렬왕은 이미 왕비(정화궁주, 貞和宮主)가 있는 유부남이었으니, 결혼 생활이 순탄치만은 않았다. 게다가 낯설고 물선 타국에 산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가. <고려사>에는 제국대장공주의 타향살이 인스타 한국인 팔로워 애달픔이 전해진다.
머나먼 이국땅에 시집와서, 어원(御苑)에 핀 작약을 보며 그녀는 고향을 그리워했을 것이다. 그녀의 죽음에 원나라 무종(武宗)은 ‘청헌(靑軒)의 도리(桃李)와 같이 꽃답던 청춘이 찬 이슬 맞은 갈대같이 갑자기 시들었다’며 슬퍼했다. 후세 사람들은 공주의 죽음을 두고 고향에 대한 사무치는 그리움이 가슴속의 병이 되었을 것이라 풀이한다. 중국에서는 작약의 작(芍)자가 ‘약속한다’는 약(約)자와 발음이 비슷하여 ‘약속의 꽃’이라는 의미로도 쓰였다. 이별의 꽃이자 재회를 약속하는 꽃이었던 작약. 제국대장공주의 심상을 그대로 전하는 꽃이라 할 만하다.
고려 26대 충선왕의 어머니인 제국대장공주의 이름은 홀도로게리미실(忽都魯揭里迷失)이다.
엘리엇과 라일락
제주도민과 마농지
윤탁과 은행나무
미국 컬럼비아대를 시작으로 미 전역에 번진 반전 시위가 세계 곳곳으로 확산하고 있다. 4일(현지시간) 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프랑스, 독일, 영국, 아일랜드, 스위스 등 다양한 국가에서 가자지구 전쟁에 반대하는 시위가 열렸다.
프랑스 파리의 명문 파리정치대학(시앙스포)과 소르본 등 주요 대학에서는 지난달 말부터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공격에 항의하며 캠퍼스 건물을 점거하는 밤샘 시위가 잇따르고 있다. 시위대는 팔레스타인에 자유를 대량학살 중단 등의 구호를 외치며 농성을 이어갔다. 경찰은 지난 3일 대학당국의 요청을 받고 시앙스포 건물 안으로 들어가 수십명의 시위대를 진압했다.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 등이 졸업한 이 학교는 미 컬럼비아대와도 밀접히 교류하는 곳이다. 일부 학생들은 대학의 대응에 반발하며 단식 투쟁을 시작했다고 CNN은 전했다.
독일 베를린과 뮌헨 등 주요 도시의 대학들에서도 이날 학생 수백명이 팔레스타인 만세 학살 중단 컬럼비아에서 뮌헨까지 등을 외치며 연좌 농성을 벌였다. 베를린 훔볼트대 학생들은 앞서 이스라엘 대법관을 초청해 토론회를 열었던 율리아 폰블루멘 총장에 대해 ‘유대민족주의자’라고 비난하면서 사퇴를 요구하기도 했다. 카이 베그너 베를린 시장은 대학에서 반유대주의는 용납되지 않는다고 경고했다. 경찰은 시위대를 강제 해산시켰고, 이 과정에서 38명을 체포했다. 호주 시드니대 학생들은 본관 앞에 텐트를 설치한 뒤 반이스라엘 농성 시위를 벌이며 대학이 이스라엘 기업 및 대학과 맺고 있는 모든 관계를 공개하고, 무기회사와의 관계를 끊을 것을 요구하고 있다.
중동의 레바논에 있는 베이루트 아메리칸대 학생 수백명은 최근 팔레스타인 국기를 흔들며 거리를 행진했다. 이외에도 영국, 아일랜드, 스위스, 캐나다, 인도, 멕시코 등에서도 반전 시위가 열렸다. 다만 유럽, 남미 등에서 벌어지는 반전 시위는 미국과 비교해 규모가 작고, 평화롭게 진행되고 있다.
얼마나 아프면 일을 하지 않고 유급휴가, 병가를 받을 수 있을까. 모든 직장인들의 고민일 게다. 관련해서 지난 4월19일 영국 총리 리시 수낵은 ‘시크 노트 컬처’(sick note culture)를 문제시하며 개혁을 선언해 논란이 일고 있다. 여기서 시크 노트란 의사가 발행하는 일종의 병가진단서를 의미한다. 수낵 총리는 영국에서 ‘일상적인 어려움과 걱정거리’가 지나치게 의료화되고 있고, 병가진단서가 일반의사에 의해 남발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즉, 정신적 질환으로 보기 어려운 평범한 증상을 지나치게 질병으로 인정해줘서 기업의 생산성이 저하되고, 정부의 보건의료 지출이 증가한다고 비판한 것이다. 그 대안으로 시크 노트를 일반의사가 아닌 보다 제한된 특수한 전문가에 의해 발급될 수 있도록 개혁하려 한다.
수낵 총리의 핵심 논리를 그대로 옮겨보자. 우리는 시크 노트 자체를 변화시킬 필요가 없으며, 단지 시크 노트 문화를 변화시켜야 한다. 이를 통해 디폴트는 당신이 어떤 일을 할 수 있냐이지 할 수 없냐가 아니다. 그는 영국에서 팬데믹 이후 장기간 병가자들이 증가하고 있고, 특히 208만명의 시민들이 대부분 정신적 어려움을 호소하며 ‘경제적으로 비활동적’이라고 지적한다. 절대로 아픔을 경시해서는 안 되지만, 지나친 병가진단서 남용에 대해서는 좀 더 솔직해져야 한다고 꼬집는다. 결국, 일해야 되는데 아프다고 쉬려는 사람보다는 아프지만 일하려 하는 사람을 더욱 선호하는 ‘문화’로 선회하자는 선언인 셈이다.
이와 같은 인스타 한국인 팔로워 총리의 발언이 나온 직후 영국 안에서 여러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우선 이미 많은 사람들이 아픈데도 불구하고 상사의 눈치를 보며 참고 일을 하는, 이른바 프리젠티즘(presenteeism) 상황을 꼬집는다. 그다음으로 정신적 어려움의 경우 당사자도 모른 채 병을 키울 수 있는데, 총리가 그러한 어려움을 일상적인 걱정거리 수준으로 폄하하고 정신질환이 과다하게 진단되고 있다고 평가하는 것은 잘못이라는 지적이다. 물론 영국의 경제 및 재정 상황을 고려하고, 제한된 자원 안에서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을 추구해온 영국 공리주의의 오랜 전통 안에서 본다면 수낵 총리의 발언도 그리 놀랄 일도 아니다.
하지만 그가 ‘문화’를 운운하며 노동자의 병가진단서를 문제시한 것은 어떤 식으로 해석을 하더라도 오류가 있다. 왜냐하면 문화란 기본적으로 특정한 집단이 ‘학습하고, 공유한 생활양식의 총체’를 가리킨다. 만일 수낵 총리의 지적이 맞다면, 영국 국민 모두가 ‘꾀병’으로 인스타 한국인 팔로워 일을 기피하는 습성을 학습하고 공유하고 있다고 말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하지만 그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그런데 이에 대해 만일 총리가 자신의 주장은 몇몇 소수의 부도덕에 대해 지적한 것이라고 반론을 한다면, 이 또한 잘못된 것이다. 왜냐하면 그 소수의 사람 중 정말로 아파서 진단을 받은 환자와, 또 그러한 사람들에게 꼭 필요한 진단서를 발부한 의사들까지 여론몰이에 의해 부도덕한 사람으로 낙인찍는 잘못을 저지른 것이기 때문이다. 어떻게 해석을 하든 총리의 ‘병가진단서 문화’에 대한 공식적 담화는 그 자체로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남은 20여일, 길다면 길다
형사사법체제 붕괴시키는 검찰
기후정치가 남긴 숙제
이처럼 ‘문화’라는 말은 함부로 사용해서는 안 되는 단어다. 특히 총리의 위치에서는 더더욱 그렇다. 그리고 그러한 논리의 밑바탕에 경제적 셈법이 깊게 자리잡고 있다는 말이다. 최근 영국에는 국가보건서비스의 재정 악화를 해결하기 위해 의사를 보지 않고도 여러 질병들(편도선염, 방광염 등)에 대해서 약국에서 쉽게 무료로 약을 제공받을 수 있게 정책이 시행되고 있다. 놀라운 것은 ‘무료 사후피임약’까지 약국에서 요구하면 바로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이다. 영국의 관계자는 이것이 여성의 재생산 결정권 차원의 문제라기보다는 임신 및 출산, 육아 및 교육, 그리고 주거 등에 대한 정부의 재정지출을 줄이기 위한 대안으로 해석한다. 수낵 총리가 꾀병 ‘문화’ 운운하며 감추려 한 진실은 바로 이것이며, 오히려 이 같은 해결 방식 자체가 영국의 정치적 ‘문화’로 자리잡은 건 아닌지 의문이다.
한국에서도 아파도 일을 해야만 하는 프리젠티즘 논란은 끊이지 않는다. 정말 누구의 도덕적 해이일까. 이런 상황에서 만일 한국의 지도자가 프리젠티즘의 의미를 조금만 뒤틀어 문화라는 이름표를 붙이게 된다면 어떠할까. 예를 들면, 아파서 제대로 일을 할 수 없는데도 출근해서 시간만 보내는 문화가 만연했다고 비판한다면 말이다. 그 해답은 조만간 영국에서 엿볼 수 있겠지만, 시민에게 ‘말’로서 상처만 남기고, 실효성 없는 ‘말’뿐인 정책만 남을 가능성이 커 보이는 것은 왜일까. 어찌 보면, 이런 기대가 진짜 문화이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