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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허로 변하는 고향 볼 수 없어”…카메라 든 시골 유튜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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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작성자 진주꽃 작성일날짜 24-03-05 00:06 조회1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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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집은 진짜 비워두기 아까운 집이네요. 햇볕도 아주 잘 듭니다.
이 말은 경북 예천군 은풍면에 사는 김경만씨(53)가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 ‘마니TV’에서 김씨가 시골길을 거닐며 빈집을 소개하는 영상에 등장하는 ‘단골’ 코멘트다.
김씨는 4년 전부터 예천 곳곳에 방치된 빈집을 소개하는 영상을 찍어 올리고 있다. 시골집을 빌리려는 사람과 집주인을 연결한다. 빈집 소개 명목의 수수료를 받지도 않는다. 단지 자신의 고향에 빈집이 늘어나는 현실이 안타까워 시작한 일이라고 한다.
그의 소개로 약 50가구 70명이 넘는 사람들이 인구 5만여명의 소멸위험 지역인 예천군에 자리를 잡았다. 이들은 김씨와 함께 ‘호형호제’하며 여름이면 강가에서 다슬기를 잡고 겨울에는 모닥불에 모여 앉아 고구마·감자를 구워 먹는다. 너른 마당에서 직접 기른 갖은 채소로 만든 비빔밥도 함께 즐긴다. 그 사이 그의 유튜브 채널 구독자 수는 14만명을 넘었다.
지난달 29일 예천군 은풍면의 한 빈집에서 만난 김씨는 12년 전 홀어머니를 모시기 위해 경기도 안산에서 고향인 이곳으로 돌아왔다고 했다.
그는 집안 형편이 어려워 17살에 안산에 있는 공장에 취직했다며 고향으로 돌아왔는데 옆집이 군데군데 무너져 아주 흉가가 돼 있더라. (빈집)문을 열었더니 박쥐가 나오는데 기절하는 줄 알았다고 말했다.
그는 이처럼 마을 곳곳에 방치된 빈집이 늘어나는 게 안타까웠다. 사람이 떠난 시골집은 3~4년만 지나면 지붕 등 곳곳이 허물어지는데 자칫 시기를 놓치면 흉가처럼 변해버린다고 했다. 그렇게 그는 폐허로 변해가는 고향을 지키기 위해 카메라를 들었다.
김씨는 먼저 1년 임대료가 30만~100만원 하는 빈집 4~5곳을 찍은 영상을 올렸다. 월세로 따지면 2만5000~8만3000원인 셈이다. 인맥을 총동원해 빈집 주인에게 연락해 허락을 얻어낸 집들이다. 많이 무너진 집은 7~10년 이상 임대 조건을 내세워 세입자가 1000만~2000만원을 들여 수리해 살기도 한다.
그는 저렴한 가격으로 시골 생활을 체험해본다는 점에서 상당히 반응이 좋았다며 빈집이 이렇게나 많은데, 오히려 시골에 와서 살고 싶은 도시 사람들은 집을 못 구해 안달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고 설명했다. 이어 집주인은 빈집을 관리해줄 사람을 구해서 좋고 세입자는 저렴한 가격에 집을 구할 수 있어서 좋다. 마을 주민도 활기가 돌아 좋다고 한다고 말했다.
이날 인터뷰를 위해 방문한 빈집도 새로운 주인을 찾았다. 김씨의 오랜 친구가 살았다는 이 빈집은 경기도 광주에서 내려온 김모씨(50)의 보금자리가 됐다. 현재 내부 이곳저곳을 고치고 있는 이 집의 월세는 10만원이다.
김모씨는 우연히 마니TV를 보고 2년 동안 귀농을 준비했다. 함께 영상을 보며 준비한 언니는 1년 전에 이곳으로 먼저 귀농했다며 마침 깨끗한 빈집이 나와서 내려오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김씨가 운영하는 귀농·귀촌을 준비하는 온라인 모임에서 새로운 인연을 만나기도 했다.
김씨를 통해 예천으로 귀농한 사람 중 새로운 인연을 만난 부부만 5쌍이다. 김씨는 인스타그램 팔로워 구매 귀농·귀촌을 하시려는 분 90% 이상이 혼자인 경우가 많다. 덕분에 팔자에도 없는 중매 역할도 하게 됐다며 웃음을 터트렸다.
김씨는 무작정 귀농·귀촌을 위해 땅을 사거나 집을 짓기보다 시골에 먼저 한 번 살아보기를 권한다. 시골 특유의 공동생활에 적응하지 못하면 돈도 잃고 마음도 상한다는 것이다. 2022년 기준 전국의 빈집은 140만호가 넘는다. 경북의 빈집은 12만여호로 열 집 중 한집은 빈집인 것으로 조사됐다.
그는 유튜브 첫 수익 전액을 모교인 은풍중학교에 기부했다. 유튜브 수익으로 매년 마을 학교와 홀몸노인 난방비 지원으로 150만원을 기부하기도 한다.
김씨는 해가 지면 쥐죽은 듯 조용한 마을이 싫다. 왁자지껄하고 사람 사는 냄새 물씬 나는 그런 마을을 만들고 싶다며 하나둘 이렇게 모여 살다 보면 언젠가 그렇게 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